[심재열] 불교와 풍수지리학 (1)

사찰풍수와 풍수지리

한국학회 승인 2020.10.02 11:43 | 최종 수정 2020.10.02 11:44 의견 0

1. 사찰풍수의 전개

한국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이었다. 백제는 그로부터 12년 뒤인 침류왕 원년(384)에 불교를 받아들였고, 신라는 다시 150년 후인 법흥왕 14년(527)에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를 공인하였다.

삼국 시대 신라의 불교는 교종(敎宗) 중심이었으나 신라 말기에 중국에서 남종(南宗)의 선법을 배워 온 도의(道義) 국사가 헌덕왕 13년(821)에 가지산(迦智山) 보림사(寶林寺)를 창건하고, 홍척(洪陟)이 흥덕왕 원년(826)에 지리산 실상사(室相寺)를 창건하면서 선종(禪宗)이 크게 일어났다. 이후로 한국 불교는 교종과 선종이 시대에 따라서 어느 한쪽이 더 성행하였던 때도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선교(禪敎) 양종이 같이 발전해 오고 있다.

고대로부터 존재했던 우리의 자생적 풍수가 중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은 통일 신라 말기로 짐작된다. 당시 선종 계통의 승려들이 당나라에 유학을 하면서 중국풍수를 들여온 것이다. 이들 중 도선(道詵)은 우리의 자생풍수에 중국의 풍수이론을 접목하여 풍수를 하나의 학문으로서 정리하고 집대성하였다.

신라 말에 선종이 도입된 이후로 풍수이론은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이론을 갖추고 사찰에서부터 왕실, 사대부, 민중계층에까지 그 영역을 급속히 넓혀갔다.

고려 시대에는 마을과 도읍이 택지하는 양기, 궁궐・사찰・서원・주택 등이 입지하는 양택, 조상의 묘를 선정하는 음택까지 모든 계층과 모든 분야에서 풍수설이 크게 성행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유교적 조상숭배 사상의 영향으로 음택이 더욱 발전하였다.

불교는 처음 전래된 이래 1600여년 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 해 왔다. 특히 삼국 시대 이후 고려 시대까지 불교는 국교로서 국가전체의 지배적 이념이고 사상이었다. 우리 조상들의 삶을 지배해온 불교에서 풍수이론은 가람의 입지선정, 건축물의 공간구성과 배치, 구조물의 설치 등에 중요하게 적용되어 왔다. 불교가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던 것처럼 사찰의 입지선정, 공간구성, 건물배치에 풍수가 적용되는 방식도 또한 변화해 왔다.

 

2. 사찰풍수의 이론과 사상

가. 풍수지리학의 기원

풍수지리는 󰡔삼국유사󰡕에 의하면 이미 고조선 시대에 활용된 기록이 있다. 단군이 나라를 세우는 과정에서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桓雄)이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계를 구하고자 했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白)을 내려다보니 널리 인간 세계를 이롭게 할만 했다. ‘삼위태백’을 살폈다는 부분은 풍수로 해석하면 삼산, 곧 주산ㆍ좌청룡ㆍ우백호를 이르는 것으로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풍수를 살핀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변화무쌍한 자연환경 속에서 활동이 편리하고 재해로부터 안전한 곳에 주거지를 마련하고자 하는 인간의 바람이 오늘날 풍수이론의 기초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풍수리지학은 중국 후한 시대에 청오자(靑烏子)가 󰡔청오경(靑烏經)󰡕을 지으면서 그 이론과 응용의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사찰풍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풍수사상사를 검토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중국의 풍수사상사를 아울러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아래 표는 풍수지리학의 발전과정을 중국과 우리나라의 시대적 상황과 연계하여 상호 비교한 것이다.

[표 3-1] 중국과 한국의 풍수이론 발전과정


한국의 풍수설은 불교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한국의 자생풍수라는 고유의 택지사상이 있었으나 중국으로부터 불교가 도입되면서 사찰의 입지 선정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생풍수와 중국의 풍수이론이 접목되었다.

나. 사찰풍수의 정의

사찰풍수라는 용어는 사찰(寺刹)과 풍수(風水)가 결합된 용어이다. 구체적으로 사찰풍수는 “사찰이라는 공간에 건물의 배치와 가람구성을 기획함에 있어, 인도에서부터 형성된 아란야(阿蘭若)로서의 적합한 입지환경 원칙, 우리 고유의 자연숭배사상, 영지사상, 전불가람설 및 생명과 국토가 둘이 아니라는 의정불이사상(依正不二思想), 다불불국토사상(多佛佛國土思想), 토착풍수사상, 중국으로부터 연원되어진 다양한 풍수이론과 비보압승의 풍수논리 등이, 사찰 창건 과정에서 종합적으로 융화되어 자주적이고 창의적으로 적용된 사찰입지선정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다. 사찰풍수 이론

사찰의 입지를 선정할 때에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전제된다.

첫째, 불전과 불탑이 서로 조화롭게 배치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불교의 신앙 대상이 불탑에서 불상으로 바뀌면서 불상을 모신 불전이 사원 조성의 중심이 되었으나, 불전과 불탑의 조화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이다.

둘째, 여러 부처님을 모실 수 있도록 다수의 불전을 배치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셋째, 우리 민족 고유의 산악숭배사상과 토착신앙을 수용하는 공간인 산신각이나 칠성각 등을 배치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넷째, 비, 안개, 눈, 바람, 추위, 더위, 습기, 햇볕 등 자연환경과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적은 곳이어야 한다.

다섯째, 음양오행사상을 응용하여 길지길방(吉地吉方)과 흉지흉방(凶地凶方)을 가리고, 그 가운데 흉지흉방이 아니라 길지길방인 곳이어야 한다. 이것은 취길피흉(取吉避凶)의 상지법(相地法)을 통해 천기(天氣), 지기(地氣), 인기(人氣)의 삼재(三才), 즉 하늘의 기운, 땅의 기운, 사람의 기운이 가장 조화로운 환경의 터를 찾는 과정이다.

라. 사찰풍수의 사상

일반풍수와 사찰풍수는 인간과 땅의 관계를 각기 다르게 설정한다. 일반풍수는 땅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인간 중시의 입장에 선다. 좋은 터에 궁궐이나 집을 세움으로써 왕조・가문・개인의 번영을 이루고자하는 양택풍수(陽宅風水)와, 좋은 터에 능이나 묘를 씀으로써 동기감응의 발복을 구하거나 조상숭배와 봉제사를 통해 정통성을 계승하고자 하는 음택풍수(陰宅風水)가 일반풍수에 해당한다.

반면 사찰풍수는 국토와 몸이 둘이 아니라는 의정불이사상(依正不二思想)에 기초하여, 땅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보다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중시하는 입장에 선다.

사찰풍수는 조화와 균형을 지향한다. 인간과 인간, 자연과 인간, 불교와 자연, 인간과 불교를 조화롭게 함으로써 상서로운 기운을 만들어 보려는 것이 그 기본 사상이다. 따라서 사찰풍수는 일반풍수와는 다른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찰풍수의 사상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반풍수가 음양을 구분하고 따라서 양기와 음기, 산 자를 위한 양택과 죽은 자를 위한 음택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반면, 사찰풍수는 음양을 구분하지 않으며 따라서 양기와 음기, 양택과 음택을 구분하지 않는다.

사찰풍수는 어떤 장소가 수행과 전법을 위한 곳으로 적당한가를 따질 뿐이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 유해를 화장하여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따라서 사찰풍수는 일반픙수의 음택풍수와 같이 땅에 묻힌 유해가 명당의 생기와 작용하여 자손과 동기감응 한다거나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이는 불교의 업설에 따른 윤회사상, 그리고 지(地)・수(水)・화(火)・풍(風)으로 구성된 우주와 육체는 조건에 따라 생겨났다가 조건이 다하면 소멸한다는 연기설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제가(齊家)를 위한 공간인 양택과 행효(行孝)를 위한 공간인 음택을 찾고자 하는 일반풍수가 땅을 어떤 현세적인 복리를 이루게 하는 성복지(成福地)로 이해하는 반면, 사찰풍수는 땅을 수행과 전법을 통해 불국토를 이루게 하는 성수행처(聖修行處)로 이해한다.

일반풍수는 땅기운과 사람의 기운이 둘이 아니라는 기토불이(氣土不二)의 관점에서 땅에 접근한다. 이에 비해 사찰풍수는 자기완성의 상구보리(上求菩提)에 목적을 둔 수심도장(修心道場)인 동시에, 중생 구제의 하화중생(下化衆生)에 목적을 둔 전법도장(傳法道場)이라는 관점에서 땅에 접근한다.

또한 사찰풍수는 종적으로는 제자와 스승이 상전(相傳)하며 수행의 완성으로 나아가는 성수행처인 동시에, 횡적으로는 승속(僧俗)이 상의상자(相依相資)하며 불국토의 완성을 위해 연대하는 성불토라는 관점에서 땅에 접근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경전 속의 가르침으로는 “보살이 정토를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 마음을 깨끗이 하여야 하며, 그 마음의 깨끗함을 따르면 불국토 또한 깨끗해지리라.”

“모든 흙과 물은 다 나의 옛 몸이고, 모든 불과 바람은 다 나의 진실한 본체이다.” “천지와 더불어 내가 한 뿌리요, 만물과 더불어 내가 한 몸이다.” 등이 있다. 이와 같이 사찰풍수는 마음과 국토, 몸과 국토뿐만 아니라 몸과 몸이 의지하는 모든 주거환경과 조건이 둘이 아니라는 심토불이(心土不二), 신토불이(身土不二) 및 의정불이론적(依正不二論的) 입장에서 출발한다.

셋째, 사찰풍수는 음양오행설에 기초한 기존의 풍수사상에 불교사상이 어우러지면서 형성된 새로운 형태의 풍수사상이다. 사찰풍수는 우리나라 사찰에서 관찰되는 고유한 특징이다. 예컨대 백양사가 과거에 정토사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던 것은 사찰풍수와 관련된다. 백양사가 입지한 지역의 형세가 풍수지리적 물형론으로 보아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에 해당하는데, 연꽃[蓮花]은 정토세계와 관련되는 것이기 때문에 정토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정토사였던 시기의 백양사 주금당은 아미타불을 주존불로 하여 극락정토 세계를 구현하는 것을 수행과 전법의 이상으로 삼았을 것이다. 불교의 교리를 풍수이론에 접목시키는 이와 같은 사례는 일반풍수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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